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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교수들은 서비스직?2018-11-03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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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들은 어찌보면 서비스직이다.

물론 교수도 아닌 사람이 이런 글을 작성하는 것은 사실 시작부터 매우 위험하고, 어찌보면 예에 어긋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부생이 이런 글을 적는 것은, 짧은 기간이지만 그래도 대학교에서 보고, 듣고, 느낀 점을 토대로 교수들의 학습법에 대한 문제점 및 대안을 제시하기 위함이다.


"대학 수업은 재미있는가?", 혹은 "내 수업이 재미있는가?"에 대한 설문을 학생들에게 던져보거나, 학부생들의 가짜 웃음을 방지하기 위해 학부생들 중 누군가를 시켜서 몰래 수업의 흥미, 혹은 만족도에 대한 설문을 시켜보라. 과연 수업이 정말로 재미있거나 유익했다고 할 수 있는 수업이 많을까?


나의 경험을 말해보겠다. 나의 경우 이산수학 교과목은 매우 재미없었다. 정말로, 정말로, 재미가 없었다. "이산수학의 아름다움, 참맛을 느끼지 못한 너의 탓이다!"라고 말한다면 소비자인 나로서는 물론 이해한다. 학부생은 공부해야하고,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음으로써 혹여나 "노잼"을 스스로 초래했다면 나의 문제이다. 허나 수업은 학생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수업이라는 제품을 생산하는 생산자, 즉 교수들이 존재한다. 수업을 생산과 수요라는 시장경제적인 논리로 논하는 것에 반감을 느낄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이 문제를 분석하기엔 이 논리가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음식점에서 손님이 음식이 맛이 없다고 하면, 주방장은 메뉴를 수정해야한다. 서비스의 질이 좋지 않다고 하면, 종업원의 태도를 개선하거나, 종업원을 바꿔야 한다. 인테리어가 늙거나 깨끗하지 않다면, 전부 엎어버리고 깨끗히 닦아야 한다. 수업도 마찬가지다. 학부생들 대부분이 수업이 끝남을 기다리고, 수업이 끝나면서 문을 나오면서 "아 진짜 노잼이다."라는 말이 나온다면, 이는 음식(수업)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음식(수업)에 문제가 있다면 주방장(교수)은 이를 수정해야한다. 물론 대학(음식점)에선 학부생(소비자)들이 무조건 수강(소비)을 해야한다는 교수(주방장)들에게 있어선 매우 강력한 장점이 있다. 자신의 음식이 맛이 있든 없든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들은 어차피 그 음식이 좋든 싫든 먹어야한다.


특정 음식점(수업)이 맛이 없어 봤자 그냥 별점 테러(수업/교수 평가)하면 된다. 허나, 그러한 음식점(수업)이 다수고, 그러한 음식점들이 하나의 상권(대학)을 이루고 있다면, 어느 순간 그 상권에는 소비자들(학부생)의 입소문이 돌아 발길이 끊길 수 있다. 이는 대학에겐 좋지 못한 상황이다. 물론 한국에서는 브랜드 가치라는 명목으로 경희대학교는 생존할 수 있겠지만, 과연 그것이 평생 통할 것인가? 평생 이름 하나로 위태롭게 대학을 유지할 것인가? 이름도 중요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恒産이 없으면 이름(恒心)도 없을 뿐이다. 대학이 생산해서 사회에 파는 제품은 학부생인데, 학부생을 제대로 생산하지도 못해서 恒心은 커녕 恒産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교수가 수업을 하는 모습은 다음과 같다.

교재를 편다. 진도를 나갈 것이다. 교수가 교재를 쭉 읽거나, 다 같이 읽는다. 그리고 거기서 교수는 중요한 점을 밑줄을 치거나, 칠판에 적는다. 자리에 앉아있는 학부생들은 그걸 보고 부랴부랴 노트에 필기를 하고, 교수님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 녹음까지 한다.

솔직히 말하겠다.

지루하다.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 학부생들? 혹은 일반적인 학부생들? 이들은 폰을 키고 게임을 한다. 혹은 존다. 시간이 가기를 원할 뿐이다. 이들이 고3 때 찌들은 수능/입시에서 벗어난 해방감 때문에 그냥 졸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대학교 저학년들은 시들시들하고 고학년들은 부랴부랴 학점을 따고 힘들게 공부하는 것일까?

그렇다고 해서 교수들이 이러한 학부생들에게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 그들에겐 나가야하는 진도가 있다. 진도를 다 나가지 못하면 이 학부생들은 다음 교과목을 들을 수 없다. 오늘안에 미분의 기초 이론을 전부 익혀야 다음 수업 때 이들에게 미분을 응용할 수 있게 다항식 미분을 가르칠 수 있는 것이다. 오늘 반드시 조건문을 공부해야 내일 이들에게 나갈 어려운 실습 문제를 낼 수 있다.


요약해보겠다. 교수들은 진도를 나가는 척을 하고 있고, 학부생들도 수업을 듣는 척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는 마치 그냥 일종의 의식과도 같은 것이다. 열심히 스스로를 매질하며 공부하려는 학부생들도 힘들게 힘들게 재미없는 수업을 들으며 알맹이를 건질 뿐이지, 대부분의 학부생들은 그냥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하루 종일 교수만 떠드는 수업보다는, 차라리 확실하게 학부생들이 수업의 내용을 이해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게 시험을 자주 보는 것이 어떨까? 시험 점수를 성적에 반영할지 말지는 교수가 알아서 판단하되, 시험을 자주 봄으로써, 학부생들 스스로도 자신의 위치를 알고, 교수들도 학부생들의 위치를 알 수 있게 하는 구체적인 지표를 얻는 것이다. 무한경쟁으로 몰고 가고, 학부생들에게 오히려 스트레스를 가중하는 것이 아니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허나, 나는 대학은 오히려 학부생이 "전진"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학부생이 자신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교수는 이들이 발전할 수 있게 만들고, 동시에 학부생은 이에 자극을 받는다. 자극은 교수가 줄 수도 있지만, 당장 이들은 주변 친구들의 성적으로 자극을 더 받을 것이다. 시험 성적이 성적에 반영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이들은 자극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교수의 역할은 두 가지이다. 이 경쟁이, 선의의 경쟁이든 뭐든, 학부생 개인에게 학문적으로 발전하는 그 이점을 강조하는 것이 첫번째이고, 도중에 이 학부생들이 포기하거나 질리지 않게 하는 것이 두번째이다.


시험을 통한 무한 경쟁이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되면, 차라리 실습이라도 자주 시키는 것은 어떨까. 물론 이렇게 반문할 수 있다. "아니, 이론을 알아야 실습이고 뭐고를 할 수 있는 것 아니느냐?" 맞다. 이론은 중요하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시험이나 실습은 중간고사, 기말고사 수준의 어려운 문제를 묻는 것이 아니다. 첫날 print 함수를 배웠다면, 이들에게 시험이나 실습은 그 수준에서 내야한다. 시간이 지나고, 중간고사가 가까워질 수록 학부생들의 수준이 발전하는 것을 보면서 수준을 올리고, 응용하라.


수업을 나갈 시간이 부족해보이는가? 그렇다면 학부생들로 하여금 스스로 인터넷에 찾아볼 수 있게 독려하거나, 아예 강제해보라. 인터넷에 찾아서 스스로 공부하지 않으면 안되는 실습 문제를 내버려라. 혹은, 소융개론 텀프로젝트처럼 아예 대놓고 범위를 정해놓지 않고 학부생들을 넓은 들판으로 던지고, 마지막엔 서로의 결과물을 공개해버려서 부끄럽게 만들어라. 부끄러워하는 것, 분해하는 것, 솔직해지는 것, 이것이 교수들이 학부생들을 몰아넣어야하는 곳이다. 소크라테스가 말하듯, "너 자신을 알라!"는 이 말이야 말로 학부생들이 필요한 것이다. 스스로 부족함을, 스스로 앎을 확실하게 알게 만들어라!


교수도 안해본 학부생 나부랭이가 주절주절한 글이지만, 나름 자극을 받아서 한 번 소융홈피에 적어봤다. 물론, 교수들을 대상으로 쓴 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학부생들 또한 당연히 이 글을 보고 "그럼 그렇지 교수들이 문제였어"라고 자위하면 안된다. 학점 3.5 미만인 사람이 그런 소리를 하면 더더욱이 안된다. 현재 시스템을 정복하거나, 정복은 아니더라도 나름 음미하지도 못하면서 시스템의 문제를 까내리면 어쩌라는 건가. 그런 이들의 주장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학부생들도 스스로 각성해야한다. 나도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하나의 각성이다. 언제나 질문하라. 왜? 왜? 왜? 왜? 왜?

현재 시스템을 비판할 줄도 모르고, 시스템을 정복할 줄도 모르고, 더더욱이 "대안을 내놓지 못하는 것"은 학생이 아니다.


교수들은 학부생을 스스로를 확실하게 알게 하고, 언제나 질문하며, 대안을 내놓게 만들어야하고, 학부생은 이에 노력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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